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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남극진출사

크릴어획

  • 1970년 후반, 남극과 남빙양에 대한 관심을 보이던 정부는 당시 수산청의 지원 하에, 수산회사로 하여금 남빙양의 해양환경을 조사하고 크릴을 시험조업하도록 하였다. 조사단을 태운 ‘남북’호는 1978년 12월 7일 떠나 이듬해 3월 7일에 크릴 510톤을 싣고 돌아왔다.
  • 이후 1988년까지 총 8회에 걸쳐 수산자원 개발을 위한 시험조업을 하였고, 1998년부터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크릴과 메로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를 조업하고 있는데 현재 크릴의 연간 어획량은 2만~3만톤 가량이 된다.

남북호 남북호의 크릴조업 모습

남극관측탐험

  • 우리나라가 남극대륙을 탐험한 것은 1985년 한국남극관측탐험 때였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남극조약 가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1986년 개최할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남극조약에 가입해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의욕이 아주 높았었다.
  • 이에 민간단체인 한국해양소년단연맹(총재 윤석순)은, 한국의 남극조약 가입과 남극자원개발에 참가하는 계기를 조성하고 국민의 진취기상을 고취시키겠다는 목표로 남극탐험을 결정했다. 여러 기업의 후원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85년 11월 16일부터 12월 10일까지 떠난 탐험대는 두 팀으로 구성되었다.
  • 등산 전문가 7명으로 이뤄진 남극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 4,897m) 등정팀과 킹조지 섬 조사팀이었다. 등정팀은 눈보라와 -42℃의 추위, 고산증, 불면증에 시달리며 1985년 11월 29일 0시 30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정상정복에 성공했다.
  • 윤석순 단장과 홍석하 대장, 과학자, 보도진을 포함한 킹조지 섬 조사팀은 킹조지 섬 필데스 반도 동쪽해안의 베이스캠프에서 극지생활을 체험하며 외국기지들을 방문하여 우리나라의 남극조약가입 외교활동과 남극진출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했고, 이로써 탐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베이스캠프 앞의 남극관측탐험대 빈슨 매시프 등정에 성공한 탐험대 칠레기지를 방문한 윤석순 단장

남극조약 가입

  • 한국남극관측탐험이 성공하자 정부는 1986년 들어 남극조약 가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남극조약협의당사국들의 규정으로는, UN회원국은 원하면 자동으로 남극조약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UN회원국이 아니었고 그런 경우, 당사국 전원의 찬성을 얻어야만 가입할 수 있었다.
  • 우리나라가 가입신청하자 소련과 중공 등의 나라들은 북한과 동시가입을 제안했고, 1978년부터 남빙양조사와 크릴조업 등의 업적이 있는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정부와 북한 간에는 협의가 있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 우리나라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들에의 설득과 미국의 중재로 1986년 11월 28일 마침내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게 되었다. 한편 북한은 1987년 35번째로 가입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건설

  • 1987년 초 신년업무보고에서 남극연구의 중요성과 기지건설의 필요성을 외무부가 보고하자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고, 해양연구소에 극지연구실(실장 박병권)이 1987년 3월 설치되어 남극연구와 관련 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해양연구소에선 과학자들과 기술자, 대사관 참사관으로 구성된 답사반을 보내 4월 23일부터 5월 7일까지 킹조지 섬에서 후보지를 답사케 했다.
  • 기지의 설계와 감리는 현대엔지니어링이 맡고, 건설자재와 장비운반은 현대중공업이, 건설은 현대건설이 맡았다. 8월 말에 인천에서 건물 짓는 연습을 하고, 10월 6일 “HHI 1200”호에 자재와 장비들을 싣고 울산을 떠났다. 건설선은 12월 15일 킹조지 섬에 도착, 다음 날 기공식을 가졌다. 기술자들은 남극의 여름기간에 지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휴일없이 일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이 있으면 새벽 2시까지도 일했고 2달 하루 만인 1988년 2월 17일, 드디어 세종기지가 준공되었다.
  • 우리나라는 세종기지를 준공하면서 세계에서 18번째로 남극 상주기지를 가진 나라가 되었고, 1989년 10월 18일 남극조약당사국 자격을 획득했다.

세종기지 기공식 기념사진 공사 모습 세종기지 준공식

개인 ∙ 단체의 탐험

  • 1994년 1월 10일 산악인 허영호 씨가 남극점에 걸어서 도착, 1995년 12월 11일 남극최고봉 등정
  • 2002년 11월 25일 산악인 박영석 씨, 남극최고봉 등정
  • 2004년 1월 12일 박영석 씨를 포함한 5명의 남극원정대 걸어서 남극점 도착
  • 2004년 12일 20일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 남극최고봉 등정
  • 2007년 12월 28일 산악인 엄홍길 씨와 고인경 씨, 남극최고봉 등정
  • 2007년 11월 29일~12월 1일. 안병식 씨가 남극마라톤에 참가, 3위 차지
  • 2007년 12월 하순 한국산악회가 “2009 한국대학생 남극탐사대”를 조직, 남극최고봉 등정과 대륙기지 탐사, 세종기지 탐사를 했다.
  •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의 탐험이 계속되고 있다.

남극점에 도달한 그린원정대 남극 빈슨매시프 정상에 선 오은선 대장

(좌) 남극점에 도달한 남극그린원정대, (우)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정상에 선 오은선 씨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건설

  • 1988년 남극 남 쉐틀랜드군도 킹조지섬에 최초의 남극 과학연구기지인 세종기지를 설립하였으나, 남극 연구의 활동 범위가 세종기지 주변 지역으로 제한되어있었다. 선진 극지연구국가들이 집중 투자 중인 남극대륙 기반의 특성화된 연구, 즉, 전 지구 환경변화를 포함한 빙하, 천문, 우주, 운석 연구 등 남극대륙에서 수행 가능한 연구 분야들은 사실상 수행이 불가능하여 남극대륙기지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04년부터 남극 대륙 두 번째 기지 건설을 계획, 2006년 건설 연구 개발 사업 착수하여, 2007년부터 2010년 초까지 남극대륙의 6개 예비 후보지에 대한 현장 답사를 실시한 후, 남극 로스해 연안 북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 베이의 해안 지역을 기지 건설지로 선정하였다.
  • 기지건설은 남극의 여름기간인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3년에 걸쳐 단계별로 건설되었다. 1단계 건설공사는 2012년 1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수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본관동, 발전동, 정비동과 같은 주요 건축물의 기초, 철골, 판넬공사 등 외장공사와 기타 부속건물 및 구조물들의 기초공사를 완료하였으며, 2013년 10월부터 2단계 건설공사를 착수하여 2014년 3월까지 진행되었다.
  •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으로 우리나라는 1985년 11월 16일 「한국남극관측탐험단」17명이 24일간 남극 킹조지섬을 처음으로 탐험한 이후 29년 만에, 남극에 2개 이상의 상설기지를 보유한 10번째 국가가 되었다.

장보고기지 표지석 제막식

우리나라의 북극진출사

북극에의 관심

  • 우리나라는 1969년부터 아북극권인 베링해에서 명태잡이를 해왔으나 북극연구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한국해양연구소에서 1985년 남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 선포 등으로 1993년 이후 조업이 제한되었다.
  • 해양연구소에서 <북극연구개발을 위한 기초조사연구>의 일환으로 1994년 5월 11~18일 북극연구국가들의 모임(Nothern Forum)이 주최한 북극탐사 여행에 참가해 북극권의 교통편과 기후, 인간 거주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또한 북극권 진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극과학위원회 가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연구 인력과 연구비 부족으로 연구는 계속 추진되지 못했다.
  • 1995년 5월 7일 허영호 씨, 북극점 도착.
  • 1999년 여름 북극조사를 나가는 중국의 쇄빙선 “설룡”호에 극지연구센터 연구원 강성호 씨와 한 명을 승선시켜 척치 해와 베링 해를 조사한 것이 최초의 북극현장조사였다.
  • 2000년 4월 영국 캠브리지에서 열린 국제북극과학위원회 연례회의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해 북극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을 표명했다. 국제북극과학위원회 가입을 위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의 연구 결과를 유명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실적이 있어야 한다.
  • 2001년 4월 26일 캐나다 이콸루엣에서 열린 회의에 옵서버로 참가해 우리나라의 북극해 연구 현황을 발표. 또 국제북극과학위원회 가입은 해당국의 북극위원회에서 제기하여야 하기 때문에 2001년 10월 5일 박병권 박사를 위원장으로 한국북극과학위원회가 창립되었다.

다산기지 개소

  • 국제북극과학위원회 가입을 위해서는 북극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와 계획을 표시해야 했으므로 북극과학기지의 설립이 절실했다. 여러 후보지를 검토한 결과 스발바르 군도 니알슨이 선택되었고 2001년 10월 니알슨을 방문하여 시설임대를 협의하였다. 또한 10월 19일 국제북극과학위원회 사무국에 우리나라의 가입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 2002년 3월 다산기지가 될 건물을 임대하는 계약이 체결되었다.
  • 2002년 4월 25일 네덜란드 그로닝겐에서 개최된 국제북극과학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가입이 만장일치로 승인되어 18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 2002년 4월 29일 북극다산과학기지가 정식으로 개소되었다.

개인 ∙ 단체의 탐험

  • 1995년 5월 7일 허영호 씨, 북극점 도착
  • 2005년 5월 1일 박영석 씨, 북극점 도착
  • 이후에도 탐험이 계속되고 있음.

북극점을 향해 나아가는 허영호 씨

북극점을 향해 나아가는 허영호 씨